날조1000%, 미래시점 주의(나이 많음)
(08/23)
생각이 없던 건 아니었다. 아니었으나 어째선지 생기지 않았을 뿐이다.
"축하드립니다. 임신 6주차세요."
"……네?"
그랬는데, 그랬지만, 첫째 아이를 다 키워낸 후 찾아온 이 상황이, 당황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래. 거짓말 같았다.
"거짓말! 말도 안돼!"
거짓말 아닌데…….
안즈는 한숨을 푹 쉬었다. 벌써 몇 번째 얘기하는 건가. 맨 처음 부모님께 사실을 알렸을 때도,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진짜냐고 물어본 부모님 때문에 민망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조성됐었는데 당연히 주변 사람들은 더 얼떨떨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했다. 하지만 누가 안즈 자신보다 얼떨떨하겠는가. 맹세코 지금 상황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건 안즈였다.
"와아…… 잠깐 기다려봐. 그럼 안즈 내년에 둘째를 낳는 거야?"
"그럼 쉬어야 하지 않아? 나이도 있는데. 초기는 중요한 시기잖아."
"안즈, 첫째 때는 어땠더라……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안 나네. 지금 입덧이라던가 할 때 아니야? 앗, 그래서 요즘……! "
눈이 동그래진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멀뚱히 서 있던 남자 넷이 곧 복작복작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맞다. 첫째 때가 기억이 안 날 만도 했다. 왜냐면 첫째, 안즈의 딸은 이미 열 여섯 살이었다. 세상에 나온 지 16년이 지났다는 뜻이다. 그 말은 즉 안즈가 첫 아이를 낳은 뒤 16살을 더 먹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 아냐. 아직은 괜찮아……."
민망함에 얼굴을 들지 못하는 안즈를 보며 트릭스타 넷은 미소를 지었다. 첫째 아이가 그렇게 동생을 원했는데 여태 생각이 없는 듯 잘라내더니, 한참 지난 지금에서야 둘째라니. 그리고 네 남정네의 머릿속엔 어느 한 인물이 뭉게뭉게 떠올랐다.
'아, 정말 능력도 좋아.'
"아~ 정말 능력도 좋아."
"……."
앉아있던 레이가 눈을 흘겼지만 카오루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신경쓰면 지는 거다. 놀라운 소식을 들은 오늘만큼은, 이 리더를 있는 힘껏 놀려주고 싶었다. 이런 기회는 흔히 오지 않으니까.
"어떻게! 40을 넘겨서! 애를! 둘째를!"
"조용히 하게, 카오루 군."
"싫어. 사쿠마 씨 때문에 안즈 쨩이 그 나이에 힘들게 애를 낳게 생겼는데."
"……."
할 말이 없는 듯 뚱하게 입을 다물어 버리는 레이를 보며 카오루가 킥킥 웃었다. 솔직히 둘 다 대단했지만 그런 게 중요한가 뭐. 당장 놀릴 먹잇감이 눈 앞에 있는데 그걸 놓칠 하카제 카오루가 아니지. 주위에서 눈치를 보는 듯 하면서 슬쩍슬쩍 입가를 가리고 있는 코가와 민망한 듯 고개를 돌리고 있는 아도니스도 물론 재밌긴 했지만 레이에 비하면 알 바 아니었다.
"못하는 게 없어요. 우리 리더는."
"못 했으니까 이제 생긴 거다만."
"그게 더 대단한 거 아니야?"
의미 없는 질답을 이어가면서도 카오루는 즐겁게 웃었다. 레이가 꿍얼거리며 던지는 대답은 그리 큰 치명타는 되지 못했다.
"안즈 쨩이 너무 걱정이다, 나이가 있어서 첫째 때보다 배는 힘들 텐데. 누구누구씨, 큰 책임감을 느끼셔야 할 때입니다."
레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카오루가 이렇게 놀려대는 것이 괘씸하긴 했으나 맞는 말이다.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 안즈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기쁨보다는 불안함이 더 컸다. 왜 오랄 땐 안 오고 이렇게 늦게 와서 엄마를 힘들게 하는 거냐, 이놈아. 하지만 그 일을 벌인 건 자신이었으니 딱히 아이를 탓할 것도 아니고…… 아니, 애초에 그 애는 내가 만든 거고……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었다.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구먼. 내가 책임 안 지면 누가 진단 말인가."
어쨌든, 첫째 아이는 동생 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으니 아주 나쁜 일만은 아닌가 싶기는 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좋은 건 좋은 건데……"
왜 다른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지?
며칠 후, 집에 돌아온 레이는 안즈가 잔뜩 끌어안고 있는 것들에 잠시 넋을 잃었다.
"……이게 다 뭔가?"
"아, 이거요. 퇴근하는데 트릭스타 애들이 가지고 가라고 안겨주더라구요. 정말, 아직 3개월도 안 됐는데 아기 용품이 무슨 소용이야. 아, 이건 하스미 선배가 주신 태교 책이고요, 이미 한번 해 봤는데 참. 왜 그렇게 걱정들이 많을까요? 음, 이건 몸 따뜻하게 하라고 모리사와 선배가…… 한여름에 담요를 어디서 사온 걸까요?"
안즈의 입에서 줄줄 나오는 아는 이름들에, 레이의 미간은 알게모르게 점점 찌푸려졌다. 벌써 필요 없는데, 하면서도 웃으면서 물품들을 나열하는 안즈를 보고 있으니, 괜한 심술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나이를 헛먹었군.'
다같이 기뻐해주면 좋은 건데, 좋은 거지만. 레이는 곧 한숨을 내쉬곤 안즈를 꼭 껴안았다.
"레이 씨?"
"……."
갑자기 레이의 품에 쏙 들어가게 된 안즈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레이를 올려다봤지만, 레이는 얼굴을 보여 줄 생각이 없는지 안즈의 어깨에 얼굴을 푹 묻고 있을 뿐이었다. 레이 씨? 팔을 톡톡 쳐봐도 미동없는 모습에 잠시 생각하던 안즈의 눈에 널부러진 물건들이 들어왔다.
"……설마."
레이와 부대끼며 산 지 20년 가까이 됐다. 이제 안즈는 레이의 행동 패턴 정도는 어느정도 읽을 수 있었다. 여전히 속내를 완전히 읽는 건 무리지만, 지금의 행동은 예전에도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아마.
"말하지 말게."
"왜 질투하고 그래요, 레이 씨."
"말하지 말라니까……"
"아는데 어떻게 말을 안 해요. 왜 질투하고 그래요, 정말."
가둔 팔을 살며시 잡고 바라보는 웃음섞인 상냥한 눈빛에, 레이의 고개가 들렸다. 오랫동안 함께하니 달래는 스킬마저 능숙해져 버렸다. 더이상 레이는 안즈를 속일 수 없게 되었다.
"괜찮은가? 이렇게 늦은 시기에,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 몸은 좋기도 하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이 몸이 먼저 챙겨줘야 하는데, 다른 녀석들이 선수를 치고 있으니."
"레이 씨. 계속 말했잖아요. 나는 괜찮아요. 조금 시기가 당황스럽긴 해도, 이 아이는 소중한 선물이에요. 오히려 레이 씨가 원하지 않았다면 어떡하지 걱정했으니 그런 걱정은 넣어두세요. 괜찮으니까. 응?"
"……."
안즈를 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 품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든든하고, 편안하고, 포근한, 안즈의 방어막이었다. 안즈는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는 레이 씨가 최고인 거 알잖아요. 레이 씨도 앞으로 많이 챙겨주면 돼요. 그리고 이 아이가 벌써 최고의 선물인걸요. 너무 신경쓰지 말고 잘 낳아서 잘 키울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약속."
"……그래…… 약속."
레이의 표정이 스르르 풀렸다. 자신의 아내는, 언제 어디서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이 사랑스러움을 자신 이외에도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건 조금 분한 사실이지만.
"앞으로 일은 쉬도록 해."
"심술쟁이."
"이런 심술이라도 부리게 해 주게."
그러니까, 이 정도의 심술은 봐 줬으면 했다.
'연성 >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앙스타/레이안즈] Everyday Relay (0) | 2017.09.18 |
|---|---|
| [앙스타/레이안즈] 전력 60분 - 정반대 (0) | 2017.09.02 |
| 레이안즈 조각글 (0) | 2017.09.02 |
| [앙스타/레이안즈] 장마가 계속되던 그때 그 시간에 (0) | 2017.08.05 |
| [앙스타/레이안즈] 유곽AU 보고싶다 (0) | 2017.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