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등장주의(이름은 안 나와요~)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매우 사이가 좋았다. 자식 입장에서 부모가 사이가 좋은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덕분에 집은 항상 화목했고, 평화로웠다. 나이차가 조금 나는 누나도 엄마를 꼭 빼닮은 상냥함으로 잘 대해주었기에, 집안의 막내 아들인 아이에게 나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은 없다고 생각되고 있을 뿐이라도.
"있지, 아빠 정말 멋있지?"
"……."
아빠가 속한 그룹의 새 앨범이 나왔고, 그 아빠는 현재 TV 속에서 신곡을 열창 중이었다. 앨범이 나왔을 때, 아니, 그 전 앨범 티저, 자켓 등이 속속들이 공개될 때, 엄마는 반짝거리는 눈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TV를 보는 눈도 그렇다. 아빠를 볼 때마다 엄마는 그저 소녀같이 볼을 붉히고 반짝거리는 눈을 했다. 그런 엄마는 정말정말 예뻐서, 아이는 되려 더 무뚝뚝한 표정을 짓곤 했다.
"엄마는 아빠가 멋있어?"
"당연하지. 아빠의 피를 받았으니까, 우리 아들도 아빠같이 멋있는 남자가 될 거야."
아빠같은 남자는 되고 싶지 않은데. 눈을 가늘게 뜨고 TV 화면을 응시하자, 집에 있을 때와는 딴판인 모습의 어른 남자가 보였다. 집에선 저런 표정 안 짓는다.
"매일 보잖아?"
"매일 봐도 설레고 멋있는 거야. 누나한테도 물어봐봐."
누나의 의견은 도움이 안 된다. 상냥하지만 누나는 결국 아빠 편이니까. 한숨을 쉰 아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같은 업계 종사자인데도 설레?"
"그런 어려운 말은 또 언제 배웠어?"
이런 단어를 쓰면 아빠가 껄끄러워하니까, 더 눈에 불을 켜고 어려운 말을 습득하게 된다. 하지만 굳이 사실대로 대답하지는 않고 눈이 동그래진 엄마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대답, 엄마.
"엄마는 아빠랑 같이 일하지는 않으니까. 가끔 피드백은 주고받지만 엄마는 아빠네에 관여할 자격이 없거든. 그냥 저 팬 누나들이랑 같은 입장이야. 이해가 될까? 어렵나?"
"……흐음…… 그치만 엄마."
"응?"
아이는 의미심장한 소리와 함께 TV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미안하지만 끝까지 엄마의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돌려줄 의지는 없었다.
"아빠는 귀엽지 않잖아."
"……에."
"나도 누나들한테 인기는 많은 편이야."
"아…… 으,응. 그렇지. 우리 아들도 인기 많지……"
"말해두지만 아빠 닮아서는 아니야."
아니…… 그건 아닌데…… 라고 말하고 있는 엄마의 표정을 무시하며 아이는 냉정하게 한 마디 더 보탰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 오늘은 나랑 자. 아빠 말고. 약속해."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결연한 표정은, 엄마 되시는 안즈의 의견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붙자는 게냐, 아들?"
"약속했어. 오늘은 나랑 잔다고 했어."
"아빠가 없을 때 일방적으로 하는 약속은 효력이 없다고 지난번에 말했을 텐데 말이야."
"그런 게 어딨어? 인정 못해. 권력 남용이야."
"……."
아빠 되시는 분, 지금 전국의 소녀들로도 모자라 아주머니 팬층의 마음까지 쥐고 흔들고 있는 초일류 아이돌 사쿠마 레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껄끄러워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아빠의 표정 변화에 아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덤덤히 쳐다볼 뿐이었지만, 눈에 들어간 힘은 풀릴 줄 몰랐다.
"……하아. 나이에 맞지 않게 똑똑하게 키우지는 않았는데."
"아빠는 내가 똑똑하게 행동하는 걸 싫어하니까."
흐흥, 하고 뿌듯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아들을 본 레이가 한숨을 쉬었다. 피는 못 속인다는 것인지. 딸 역시 어릴 적부터 의젓하긴 했지만 아들만큼 나이를 초월한 단어 구사력을 보이지는 않았었다. 레이는 아이들이 나이에 맞지 않게 똑똑한 것이 걱정스러웠고, 특히 아들은 자신을 많이 닮은 것 같아 더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건 그거다. 이건 이거고.
"하지만 양보는 못 한다, 아들. 이 녀석, 자꾸 머리 써서 아빠 속을 긁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 아빠가 그런 것도 모를 것 같으냐? 누누이 말하지만 엄마는 아빠의 신부고 아내란다. 알겠는고?"
"난 아들이야."
"원래 아들은 2순위인게야."
"이혼하면 부부는 남남이지만 부모자식은 1촌이야!"
이 녀석이 정말. 레이의 미간이 구겨졌다. 슬쩍 욕실의 기척을 살피자 물소리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들렸다. 곧 안즈가 나올 것이다. 그 전에 결판을 내야 했다. 이 건방진 아들놈과의 대결을.
"혼자 못 잘 나이는 지났잖나?"
"오늘 밤은 무서워. 아빠가 양보해."
"그런 뻔뻔한 거짓말을……"
결코 그럴 리가 없다. 제 아들은 타고난 성정도 차분했고, 또래의 아이들보다도 침착하고 어른스럽단 평을 받고 있는데다 더 어릴 적부터 혼자 집 보는 것도 덤덤하게 해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은 그냥 엄마를 아빠에게서 뺏고 싶을 뿐이었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매일 밤 이런 격전을 펼치는 것이고. 레이의 입매에 힘이 실렸다. 질까보냐.
"그럼 공평하게 하자꾸나? 아빠가 없을 때 기습하는 건 너무 비겁하지 않누?"
"아빠도 기습하잖아."
"이 몸은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것이고."
"……."
아이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휙 돌렸다. 당치도 않은 소리 말라는 것이다. 이쯤 되니 레이도 슬슬 진심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해서, 마지못한 표정으로 주먹쥔 한쪽 손을 슥 내밀었다.
"……그럼 항상 하는 걸로. 공평하게."
"……."
"오케이?"
"……에잇, 와라!"
"그래, 간다!"
그 순간, 욕실의 문이 열렸지만 이미 다른 세계로 간 두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가위, 바위, 보!!"
세상 진지한 가위바위보의 울림에 막 욕실에서 옷을 갖춰입고 모락모락한 김과 함께 나온 안즈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않고 비긴 가위바위보를 계속했다.
"……어휴."
또 시작이군. 저 대결은 도대체 언제쯤 끝나려나? 살풋 웃으면서 어이가 없기도 해서, 안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나마나 외롭게 자기 싫은 레이가 아들에게 승부를 신청했을 터였다. 어른스럽지 못하게.
"으윽……!"
패자는 아들인 모양이었다. 뭐, 항상 그랬다. 도대체 무슨 꼼수를 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평할 수밖에 없을 가위바위보마저 레이는 척척 이겨버리곤 했다. 사실 그걸 알면서도 매일 도전하는 아들이 좀 귀엽기도 해서 안즈는 매일같이 일어나는 이 싸움을 방관하고 있는 참이었다.
"어른스럽지 못하게. 애를 상대로 매일 온힘을 다하고 있어요, 정말."
"맞아!"
"뭐야, 또 졌어?"
한쪽 방문이 열리더니 딸의 고개가 쏙 내밀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누나를 본 아이의 얼굴이 단박에 울상이 되었다.
"내일은 진짜 내가 이길 거라고, 두고봐. 아빠는 완전 사기꾼이야. 세상 사람들은 속고 있어."
벌떡 일어나 제 방문을 열고 들어가 버리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안즈와 딸의 웃음이 터졌다. 저 아이는 진짜로 아빠를 싫어한다기보다는 조그만게 저 대단한 아버지를 라이벌 상대로 여기는 것일 뿐이니까. 귀엽게도. 그렇게 한참 쿡쿡대고 웃던 안즈의 눈길이 레이에게 향했다. 잘나신 남편은 아들을 이겨먹고 뭐가 그리 좋다고 방긋방긋 웃으며 안즈를 향해 팔을 벌린다.
"혼자 자세요."
"응?"
"애를 얼마나 놀려먹어야 만족해요, 정말. 나는 공평성을 지향하니까 오늘은 혼자 잘래. 레이 씨는 사죄의 의미로 사랑스러운 아들 군과 같이 자주도록 하세요. 알겠죠? 사이좋게 지내라구요."
그 순간의 아빠의 표정은 매번 볼때마다 걸작이라고, 사쿠마 가의 맏딸은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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