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해주세요
매번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벌써 몇 년 째인지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일부러 잊어버린 채로, 그렇게 하루하루 무의미한 아침을 맞이했고, 밤을 보냈다.
어느새 제법 올라간 지위에 손님을 고를 수 있게 된 지금은 막 발 들였던 시절보다 편안한 건 사실이었지만, 결국 그런 위치, 그런 세계. 안즈의 눈동자에는 항상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푸른 눈동자는 하늘의 푸름보다는 폭풍우의 바다 빛깔 같았다. 행복과는 거리가 먼 빛깔이야. 거울을 보며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안즈?"
"……예?"
안즈는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일 할 준비를 하려 느릿느릿 치장을 하던 중이었다. 이렇게 꾸며 봤자, 어차피……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어쨌든 접대란 것은 손님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것이니까. 그 이후의 일도, 그렇다. 어차피 불평하고 무서워해 봤자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움직이던 손을 멈춘 것은 안즈를 거둬 가르침을 주었던 이 유곽의 주인의 목소리였다.
"오늘은 높으신 분들이 여럿 오실 예정이니까, 조금 더 신경쓰도록 하렴. 혹시 해서 말해두지만 거절은 안 돼. 어중간하게 높은 지위라면 허락해 줬겠지만……."
"아…… 네, 괜찮아요. 신경 쓸게요. 걱정 마세요."
"……."
무슨 일인가 했더니, 중요한 손님들이 오는 모양이었다. 십중팔구 안즈를 지명했을 테지. 제일 잘 나가고, 제일 값이 있는 유녀니까. 안즈는 힘없는 미소를 짓고 마저 치장을 시작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별 기대는 없었다. 항상 그저 그렇고 똑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인데다, 이건 일이다. 딱히 선 자리 같은 것도 아니고, 기대를 하는 쪽이 더 이상했다.
"……더 좋은 인생을 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말 마세요……."
"너를 보고 있으면,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
"지금도 말이야."
어린 나이에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가족과 생이별하고 자진해 들어온 아이를, 주인은 항상 안쓰럽게 여겼다. 주인 역시 한때 잘 나가는 최고급 유녀였기 때문에 안즈의 고통과 슬픔을 다독여주고 싶어했다. 안즈가 이미 유곽 최고의 유녀가 된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한지, 가끔 이런 씁쓸함을 내비치곤 했다.
'감사해요.'
그런 마음 하나라도, 그저 감사했다.
"안즈라고 합니다."
"오, 과연. 소문대로의 절세미인이구만. 어서 오시게."
"과찬을요. 감사합니다."
방 안에는 이미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후배 유녀들이 몇몇 눈에 띄었고, 안즈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인사를 했다. 연회라도 벌일 작정이었던 건가…… 그렇게 생각한 안즈가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
"……호오."
그리고, 마주쳤다.
"과연. 자네들이 왜 그렇게 이 몸을 데리고 오고 싶어 했는지는 알겠구먼?"
피같이 붉은 눈동자를 바라본 안즈는 저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서게 되었다. 그것은, 공포라던가, 그런 감정보다는……
"그렇지요? 소문이 자자합니다. 웬만한 재력으론 만나주지도 않는다는 최고급 유녀죠. 그야말로 사쿠마 님께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그래……."
붉은 눈동자를 지닌 사내가 싱긋 웃었다. 아주 재미있다는 표정이 떠오르는가 싶더니, 곧 앉아 있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 느긋한 동작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안즈는 곧 퍼뜩 정신을 차리고 물러섰던 발을 다시 내딛었지만, 남자가 한 발 빨랐다.
"그럼, 진가를 봐야지. 그대들의 마음은 잘 봤네. 내일 보도록 하지. 값은 이 몸이 치를 테니 마음껏 들다 가시게."
순식간에 남자에게 팔이 잡힌 안즈는 그대로 그 방을 빠져나와 미리 준비되어 있던 독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가는 상황에, 안즈의 눈동자는 그저 떨리기만 했다.
그 감정은…… 그래, 굳이 이름 붙이자면, 설렘이었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재빨랐다. 안즈가 어찌할 새도 없이 문은 닫혔고, 아무도 없는 방에 둘만 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여기까진 그다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익숙하니까. 초대면인 남자도 상대해야 하는 직업이다. 이런 걸로 놀라서는 안 되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
조용히 입을 뗀 안즈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표정을 다듬곤 미소를 띠었다. 방에 들어와 손을 놔 준 남자는 잠시 그런 안즈를 말없이 바라보는가 싶더니 곧 피식 웃었다.
"그런 게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지요. 밝히길 바라시지 않는다면요. 저는 불린 값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예의라는 것이 있어 여쭤보았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방 안인데도, 남자는 빛이라도 받은 것 마냥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다. 어둠으로 물든 검은 머리카락마저 빛나는 착각이 들어서, 안즈는 잠시 눈동자를 굴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술상을……."
"자네 말이네."
하지만 안즈의 말은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곧 끊겼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안즈가 남자를 쳐다봤지만 남자는 그런 안즈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여전히 웃고 있는 채였는데,
"진심으로 웃고 있지 않지?"
"……."
안즈의 눈앞으로 다가오자마자, 그 웃음은 싹 사라진 채 날카로운 눈빛만이 남았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에서 보는 차가운 눈동자에 안즈는 할 말을 잃어버렸고 뒤는 없습니다 유곽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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