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소리야. 이즈미는 잠시 사고불능 상태가 되었다. 제 딴엔 고백이라고 한 게, 시비 거는 걸로 받아들여진 모양이었다. 아니, 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져야 그게 그렇게 받아들여진단 말인가.
‘무슨 이렇게 둔한 여자가 다 있어!’
그렇게 굳어있는 사이 안즈의 울음은 그쳤다. 훌쩍거리며 눈가를 훔치는 안즈를 계속 지켜보던 이즈미가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자세를 고치고 입을 열려는 순간, 안즈가 벌떡 일어섰다.
“갈래.”
“어딜!”
“집이요!”
정말 가려는 듯 안즈의 발이 움직였다. 아니, 정말로 못 알아들은 거야? 이게 고백이라는 걸? 이즈미의 입가에 허탈한 웃음이 걸렸다.
“기다려. 너, 뒤에 말만 들은 거 아냐? 네가 아깝다고 했잖아! 이거 위로 아냐?!”
안즈가 마저 내딛으려던 발을 멈추고 이즈미를 돌아보았다. 아직 촉촉한 눈가가 이즈미를 흘겼다.
“걔보다 좋은 남자가 어디 있어요? 그리고 어린애도 아니에요.”
“아오 씨 진짜! 위로를 해줘도 난리네!”
머리를 흩뜨리며 제법 짜증 섞인 한마디를 내뱉은 이즈미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들으면 아주 이미 남친인 줄 알겠어.”
“…….”
안즈는 입을 다물고 다시 뒤돌았다. 괜히 공기가 싸해지는 느낌이 들어 반팔 밑으로 드러난 팔을 몇 번 쓸었다. 뒤에서 여전히 이즈미가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모른척했다. 제정신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니 이즈미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게 견딜 수 없이 민망해서 괜히 더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얼른 이 자리를 떠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인간은 안 좋아하지만…… 너라면, 뭐, 상관없지 않을까 싶어졌거든?”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 들렸다.
“……나는 어떻냐는 얘기야.”
안즈는 돌같이 굳어 뒤를 돌아볼 생각도 못했다. 달빛이 부린 마법인가. 혹시 집에서 잠이 들어서 꿈을 꾸고 있는 건데 꿈이라고 인식을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잠시 현실을 되돌아보던 안즈의 귀에 자박자박 나뭇잎 밟는 소리가 들렸다. 이즈미가 다가오는 소리였다.
“뭐, 사실 네가 날 좋아할 거란 기대는 안 해. 해온 게 있는데 그 정도는 나도 알거든?”
고개를 기울였는지 긴 귀걸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래서 이제부터 잘해볼 생각인데.”
이즈미가 여전히 굳어있는 안즈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선전포고.”
바스락, 다시 나뭇잎이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핫, 하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안즈가 급히 뒤를 돌아봤지만 이즈미는 이미 나무 위로 올라가버린 상태였다. 저 위에 올라가 있을 때는 안즈를 제대로 쳐다봐 준 적이 거의 없었는데, 마주친 이즈미의 눈동자 안에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는 것이 못내 어색했다. 그래서 되는대로 말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자기보고 제대로 된 남자라고 한 거예요?”
“뭐?”
“되게 자신감 넘치시네요!!!”
안즈는 눈을 꼭 감고 힘차게 외친 뒤 후다닥 그 자리를 떴다. 이렇게 빨리 달려본 게 얼마만인가. 아마 인생에서 가장 힘차고 빠르게 뛴 베스트 5위에는 들어가지 않을까 싶었다.
“야!!! 내 말 듣긴 했냐?!”
뒤에서 어이없이 소리치는 이즈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안즈는 더 빨리 뛰었다. 지금 두근거리는 것은 뜀박질 때문이라고 자기암시를 걸면서.
“뭐 저런 게 다 있어, 정말.”
이즈미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뒤로 기댔다. 당연히 당황스럽겠지. 말한 본인도 당황스러운데 자신을 짜증나는 요괴 정도로 생각했을 안즈가 경황없이 행동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이해는 했다. 했지만 진짜 생각보다 더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녀석이었다.
“뭐, 알아가는 단계라는 건가.”
이즈미가 살짝 손짓하자 뱀 한 마리가 팔을 타고 기어올랐다.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면서 나머지 녀석들이 늦게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즈미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