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끝납니다!(진짜) 아 길었다
안즈는 숨 쉬는 것도 잊고 이즈미의 눈동자만을 바라보았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언젠가의 대사가 스쳐지나갔다.
- 너. 그 무대포 정신은 좀 고치는 게 좋아. 애가 어떻게 커도 변하지를 않냐?
그게 이 뜻이었다니.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생각나고 말았다. 집에 가지 않고 숲에서 웅크려 지냈던 작은 소녀의 모습이.
“너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을 걸?”
이즈미의 웃음이 한층 깊어졌다.
“뭐, 아무튼. 변태로 몰아갈까봐 하는 말인데, 그땐 너한테 그 정도의 관심밖에 없었거든? 그런 꼬맹이한테 이상한 감정 품는 저질도 아니고. 안 보이게 된 뒤로는 완전 잊고 살았단 말이지. 그런데……”
이즈미의 손이 안즈의 머리 위로 상냥하게 떨어지더니 슥슥 쓰다듬었다. 스륵스륵 기모노 스치는 소리가 놀라 굳어진 안즈의 귓가에 울렸다.
“왜 다시 외로워졌어?”
“…….”
이즈미는 손가락으로 안즈의 머리를 톡톡 두드린 후 손을 뗐다. 대답. 나직하게 울려퍼진 목소리에 안즈의 입술이 주춤주춤 열렸다.
“……그냥, 가족들이 잠시 집을 비웠을 뿐이에요. 그 사이에 이런 비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질 줄은 몰랐지만…….”
“애야? 가족들 좀 없다고 초등학교 때 하던 짓을 반복해?”
“혹시 가족 있으세요?”
허? 이즈미의 입에서 짧은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이건 또 무슨 흐름인가 싶어 조금 눈가를 찡그렸더니 말이 이어졌다.
“저 초등학교 다니기 전에, 아빠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일을 다니느라 항상 집에 없었어요. 집에 가기 싫어했던 게 아마 그때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그때 세나 씨가 저를 계속 보고 계셨다는 거죠?”
“그렇게 되네.”
집에 가기 싫어했으니 당연히 가정사가 어두울 거라고 생각했다. 이즈미는 크게 놀라지 않고 안즈의 옆에 앉아 이어지는 이야기를 경청했다.
“뭐, 조금 생략을 하고 말하자면 엄마가 재혼을 했고 새 아빠가 남동생을 데리고 와서 남동생도 생겼어요. 다행히 동생이랑 사이가 좋아졌고 새 아빠도 좋은 분이어서 적응을 지나치게 빠르게 잘했죠. 그리고서 숲에 머무는 시간이 줄지 않았을까요? 그랬던 것 같은데.”
“근데 지금은?”
이즈미의 질문에 안즈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쪽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신 모양이라서. 간호 때문에 부모님이 한동안 그쪽에서 출퇴근하는 걸로 됐거든요. 동생한테는 친 할아버지니까 동생도 같이 가있게 됐어요. 학교는 거기서도 다닐 수 있을 거리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지금 집이 비어서…… 음, 조용한 건 좋지만 빈 집은 약간 쓸쓸해서.”
“그래서 이왕 조용히 있을 거 추억의 장소나 가보자 하고 왔다는 건 아니겠지?”
정곡을 찔린 듯 잠시 조용히 있던 안즈가 이내 에헤헤 웃었다. 정곡이었나. 이즈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다시 만났던 그때도 밤이었다. 도대체가 겁도 없이 돌아다니는 버릇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뭔 일이 나도 나겠다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근데 전에도 생각했지만 왜 세나 씨 앞에서 제가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얘길 하죠? 불공평하지 않아요? 저는 하나도 모르는데요.”
“말해줘?”
투덜대던 안즈가 허를 찔린 듯 굳어졌다. 설마 이즈미가 순순히 말해 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런 안즈를 본 이즈미가 어깨를 으쓱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근데 별로 재미는 없는데. 듣고 싶은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야? 아, 가족 있냐고 물었던가. 대답해줘?”
안즈의 몸이 이즈미 쪽으로 틀어지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안즈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즈미가 귀찮다는 듯이 안즈의 얼굴을 밀어냈다. 일단 그 부담스러운 눈은 좀 치우고.
“혈연관계의 가족이 있냐고 물은 거라면 없어. 외동이고. 옛날엔 있었는데, 너무 오래돼서 기억 안 나네. 타살도 아니었고 그냥 오래들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갔으니 별로 슬퍼할 일도 아니었고? 요괴가 죽는다는 게 다 그러니까.”
안즈의 눈동자가 도로록 굴렀다.
“……혈연관계가 아닌 가족은요?”
“뭐어…… 그렇네. 유우 군? 그쪽은 날 이제 가족이라고 생각 안 하는 것 같고 하기도 싫겠지만. 형은 아직도 열심히 챙기고 있는데 말이야.”
“저기, 그런 건 스토킹이라고 해요.”
이즈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째리는 눈총을 받은 안즈는 슬쩍 눈길을 피했다. 계속 하세요…….
“딴죽 걸지 마. 그러고 보니 말인데 너 나한테 나이 따지지 마. 유우 군 몇 살인지 알면 너 걔랑 같은 교실에 앉아있기 민망할걸? 완전 말해주고 싶네. 말해줄까?”
이번에는 안즈가 이즈미를 째려봤다.
“본인 나이는 모른다면서 유우키 군 나이는 어떻게 아세요?”
“나보다 이백 살쯤 어려서.”
“그럼 거기서 이백 살 더하면 되겠네!”
“아 됐어! 나이 얘긴 이제 됐어. 조용히 좀 해, 얘기 해 말아?!”
“먼저 말 꺼냈잖아요, 왜 저한테 그래요? 계속 하세요.”
안즈가 이즈미의 눈빛을 맞받다가 먼저 피해주며 불퉁하게 말을 던졌다. 이렇게 배배 꼬인 사람의 구애에 넘어가야 하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귀는 쫑긋 세우고 있는 자신을 보니 조금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입꼬리 단속도 했다.
“……그렇게 짧은 얘기는 아니지만 최대한 줄여 보자면, 인간이나 요괴나 사는 건 그다지 다르지 않단 말이지? 오히려 요괴 쪽이 더 난잡하게 산다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네. 수명이 기니까 말이야. 그니까 싸우기도 엄청 싸웠단 말이지. 그 결과 지금은 다들 자기들 영역에서만 조용히 살거나 인간인 척 하고 있지만 뭐, 그만큼의 희생이 있었던 결과라고 할까.”
꽤 무거운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갈듯 한 느낌에 안즈는 자세를 바로 했다. 이즈미는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었지만 이 사람…… 요괴도 꽤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걸까 싶어 조금 마음이 약해졌다.
“나도 처음부터 인간들이랑 척지고 살았던 건 아냐. 가끔 마을도 나가고 그러긴 했는데 몇 년 전이더라…… 하도 오래돼서 기억은 안 나네. 아무튼 인간보다 훨씬 힘 있는 것들이 치고박고 싸워대는데 인간들이 안 무서웠겠어? 당연히 위험분자들로 몰렸지. 뭐, 그런 과정에서 혈연을 잃은 녀석들도 꽤 됐고, 그 중에 하나가 유우 군. 그게 좀 이상하게 꼬여서 내가 미움 받은 거.”
이즈미가 다리를 꼬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그때 당시를 회상하는지 눈동자가 살짝 흐려져 있었다.
“거기에 세나 씨가 가담했다고 오해받은 거예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그 이후로 별로 대화해보지도 못하고 유우 군은 인간계로 떠버렸으니. 뭐, 엄한 놈들 미워하는 것보다는 낫지 싶어서 내버려 뒀어. 하지만 걱정은 되니까 조금 지켜보긴 했지. ……잠깐, 범죄자 보는 표정 좀 집어 치울래?”
또 구려진 안즈의 표정을 포착한 이즈미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안즈가 에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요, 사정은 이해했어요.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을 유우키 군 모르게 들어도 되는 건가 싶긴 하지만.”
“괜찮을걸.”
이즈미가 양 손을 나무둥치에 짚은 채 어깨를 뒤로 젖혔다. 목소리에 언짢음이 섞여들었다.
“정~말 맘에 안 들지만~ 유우 군, 너 많이 좋아하잖아? 그냥 내 이름을 입에 담기 싫었던 것뿐일걸. 형이 이렇게 아끼고 있는 줄도 모르고 어디서 굴러먹은지 모를 놈들이랑만 어울린단 말이지.”
부루퉁한 표정을 본 안즈가 이즈미를 곁눈질했다.
“…저기요, 사실 저한테 별 마음 없죠?”
“또, 또 딴소리 한다.”
이걸 확 그냥, 이라는 글자가 써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얼굴로 이즈미가 혀를 찼다. 그치만요, 안즈가 잠시 말을 골랐다.
“생각해보면 뱀도 절 보려고 보낸 게 아니죠? 그러니까, 처음에 들켰을 때 말이에요. 유우키 군을 스토킹, 아니, 보살펴 주려고 그런 거죠?”
“…….”
이즈미의 입이 닫혔다. 갑자기 침묵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말인가 싶어 안즈의 눈이 점점 가늘어지는데 이즈미가 휙 일어섰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드는 안즈에게 표정이 보이지 않도록 이즈미가 고개를 틀었다.
“부정은 안 하겠는데.”
자리를 피하려는 줄 알았는데 이즈미는 계속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느 순간부턴 유우 군보다 네 보고를 더 받고 있었어. 말이 돼?”
이즈미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적이더니 괜히 옷깃을 몇 번 펄럭였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눈앞에 보이는 것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긴가민가하며 안즈는 멍한 얼굴로 일단 책가방을 집어 들었다.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이즈미는 뒤돌아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안즈.”
처음 안즈의 이름을 불러준 이즈미의 귀가 여전히 살짝 붉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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