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즈가 숲에 가지 않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도 없는 집은 외롭고 적막해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고는 싶었지만 이즈미의 얼굴을 태연히 쳐다볼 자신도 없었기에 안즈는 그냥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 미안해. 넌 좋은 애지만 나는…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을 줄은 몰랐네. 안즈는 몸을 감싼 이불에 얼굴을 더 깊숙이 파묻었다.
사실 이렇게 낙심하고 있긴 해도 차인 직후 펑펑 울거나 하진 않았다. 의외로 담담해서 자기 자신도 놀랐을 정도였다. 그 애와는 지금까지처럼 친한 친구로 지내자고 잘 마무리 지었고, 며칠간은 어색하게 고갯짓만 하고 지나치긴 했지만 이제 슬슬 사이가 회복이 되고 있는 단계였다. 단지 문제는 그게 아니라……
“으…….”
민망했다.
한방 먹여 주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였는데, 당당히 갖고 돌아갈 결과가 없지 않은가. 사실 나 걔한테 고백했어요, 하고 이즈미에게 보고할 의무는 없긴 하지만 자신은 표정에 다 드러나는 타입이랬으니까 금방 들킬 게 분명했다. 그래서 하루 이틀 피하다보니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잊어먹지 않았을까?”
오는 걸 귀찮아하는 요괴였으니까, 오히려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벌써 자신 같은 건 잊어버렸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은근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간 혹시 하는 마음에 주변을 자세히 살펴봤지만 뱀 같은 걸 발견하지도 못했다. 이제 유우키 군도 지켜보지 않는 걸까? 아니면 더 치밀하게 수법을 바꾼 걸까? 뭐가 됐든 좀 심심하긴 했다. 매일 툴툴대긴 했어도 쫓아내지도 않고 제법 조용히 지켜봐줘서 외롭지도 않고 좋았는데.
“지금이라도 가 볼까?”
시계를 올려다보니 밤 아홉시를 막 넘긴 후였다. 이 시간이면 여름이라 해가 늦는다 해도 꽤 어둡긴 할 텐데…… 고민을 하며 침대 밖으로 발을 내려놓는데 문득 시야에 뭔가 스쳤다.
“?”
끈 같기도 하고, 뭔가 가느다란……
“……뱀!”
투명한 뱀의 꼬리가 문 밖으로 사라지는 걸 눈으로 황급히 쫓으며 안즈는 이불을 팽개치고 급하게 방문을 열고 현관으로 향했다.
* * *
“흠?”
“어?”
숲까지 뛰어와서 가쁜 숨을 다듬다가 고개를 든 안즈의 눈에 본 적 없는 사람이 보였다. 온통 까만 색 일색인데 붉은 눈이 인상적인 사람…… 아니, 이마에 뿔이 돋아 있는 걸 보니 요괴일 지도 모른다. 도깨비인가?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눈에서부터 느껴지는 나른함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느껴져 뒷걸음질을 치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라, 정말 그 꼬맹이였네? 얼굴이 하나도 안 변했는데~ 아, 혹시 셋쨩의 식신을 보고 온 거?”
“셋쨩?”
뭔지 모를 말에 겨우 대답하고 시선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이즈미와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비슷한 상태였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요괴의 홀리는 힘, 아마 그게 발동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밤이라 어둡기까지 하니 무슨 일 당하기엔 딱 좋다. 하지만 이즈미가 있을 텐데…… 세나 씨는 어디? 겨우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정말 인간이잖아! 와하하하! 상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데! 아앗, 솟아난다, 솟아나! 인스피레이션!”
급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소름이 돋기 직전, 발밑에서 뭔가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상당히 특이하게도 주황색 털을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다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설마.
“요, 요괴?”
“그렇단다~ 참, 왕님도. 너무 예의가 없잖아. 초면에 동물 모습이라니. 안~녕! 안즈 쨩!”
“에, 에, 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갑자기 옆에 선 또 다른 누군가를 확인해보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모델인 나루카미 아라시가 서 있었다. 영문도 모르게 짧은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또 다시 영문도 모르게 만나게 될 줄이야. 심지어 이번엔 여우 귀랑 꼬리가 돋아 있다.
“진짜 왔나보네?”
혼란 속에 서 있던 안즈의 귀에 드디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 시끄럽게 하지 말고 다 사라져. 카사 군 네라도 가있던지. 그 녀석 아버지가 오랜만에 보고 싶어 하신다며 귀찮게 했었잖아? 가서 보고 오면?”
“에~ 흥미 없는데.”
입을 내미는 리츠의 옆구리를 아라시가 쿡 찌르며 여전히 고양이인 채로 뒹굴거리는 레오를 들어올렸다.
“이번뿐이니까 말이야, 잘 하는 게 좋을 걸! 그럼, 안즈 쨩, 다음에 보자!”
리츠가 움직이기 싫어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질질 끌고 가는 아라시의 뒷모습을 어안이 벙벙하게 바라보고 있는 안즈에게 이즈미가 한걸음 더 다가섰다.
“차분히 얘기하고는 싶지만…… 내가 지금 조금 기분이 안 좋거든. 자, 설명해 봐.”
설명은 세나 씨가 저한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저지른 짓이 있으니 일단 참고 안즈는 이즈미를 마주보았다. 이렇게 둘이 같이 땅 위에 서서 얼굴을 마주본 게 얼마만이던가. 첫 만남 이외엔 거의 없었던 일 같았다. 오랜만에 본 호수 같은 파란 눈동자에, 안즈는 왠지 모르지만 울고 싶은 기분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