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던 동생을 권력싸움에서 지켜주지 못하고 허망하게 인간세계로 떠나보낸 후 남은 건 후회와 절망뿐이었을 터였다. 동료들도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혼자 지내게 되어 이제 아무래도 좋아져버렸을 무렵, 그 아이는 이즈미의 눈에 띄었다.
숲에 놀러오는 꼬맹이 녀석들의 얼굴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외워졌다. 벌써 꽤 오랜 시간 마을을 지켜봐 왔는지라, 지금 이 녀석들이 옛날 여기서 놀았던 어떤 녀석들의 자식인지도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됐다. 영역이 침범당할 정도로 깊게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고, 어차피 애들은 안전구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니까 딱히 상관은 안 하고 살았지만. 그런데, 그 아이는 그런 암묵의 룰을 깨버렸다.
“안즈~ 정말 집에 안 갈 거야?”
“……가도 아무도 없는걸. 난 여기 조금 더 있을래.”
“이제 어두워지는데……”
“괜찮아.”
“위험하다니까, 가자, 응?”
“…….”
곧 어두워지니 집에 돌아가자는 친구들의 권유도 꿋꿋이 물리치고 바닥에 앉아 도리질만 치고 있던 아이는 요 근래 자주 놀러 왔다갔다 거리던 초등학생 무리에서 제일 말이 없고 얌전한 아이였다. 평소에도 돌아가는 걸 꺼려하긴 했지만 그날따라 더 고집을 부렸던 것 같다.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 도깨비가 잡아갈 거다 하며 설득하던 친구들은 결국 머뭇머뭇 돌아가 버리고 혼자 남은 아이는 쪼그려 앉아 흙장난만 치고 있었더랬다. 정말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건지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게 어쩐지 마음이 쓰여 그대로 계속 지켜봤던 게 이즈미가 처음 ‘안즈’라는 사람을 기억하게 된 계기였다.
안즈는 제일 얌전한 아이였지만 제일 돌발행동을 하는 아이이기도 했다. 얌전한 애들이 더 무섭다는 인간들의 말은 이런 애들한테 적용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다른 아이들은 숲의 깊은 곳, 즉 이즈미의 영역을 돌아보길 무서워했다. 어른들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무서워하고 어느 지점부터는 발을 들이지 않았고, 이즈미는 그게 편했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니까. 그런데 안즈는 그 선을 가볍게 넘어버렸다. 궁금했는지 어쨌는지, 숲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자 슬금슬금 탐색 구역을 넓혀가더니 이즈미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겁도 없이.
“뭐, 깡은 있잖아.”
어이없기도 했지만 어린애가 집에 돌아가기 싫어하는 게 내심 마음이 쓰였던 것 같다. 아마 그 즈음 흩어졌던 동료들과 연락이 닿고 가끔 신세지러 오는 도깨비와 여우를 귀찮게 부양해주게 됐지만, 안즈를 결계 안에 들여보내 주는 것은 계속했다. 다른 꼬맹이였으면 바로 뱀을 이용해 겁주고 쫓아내 버렸겠지만, 안즈에겐 정말로 외로움이 느껴졌기에 그럴 수 없었다.
‘인간 꼬맹이 따위, 그냥 내버려두면 되는데.’
어차피 이 숲에 이즈미가 사는 한, 다른 지역의 산이나 숲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유아 납치나 인명피해 같은 사고들은 일어날 수가 없었지만 이즈미는 안즈에게 남몰래 꽤나 신경을 썼다. 안즈가 웃으며 집에 꼬박꼬박 돌아가게 된 순간을 지나 더 커서 숲에서 놀지 않을 나이가 될 때까지.
그러고서 몇 년간은 전혀 안즈를 보지 못했고, 잊었다.
- 요괴예요?
그렇기에 그 갑작스런 만남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 * *
“어, 그 녀석 오늘은 별 일 없을 걸? 일찍 간다고 했어.”
곰곰이 생각하던 마오가 입을 뗐다. 안즈는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긴장의 한숨일지도 모른다.
“용건 있어?”
“아, 응…….”
살짝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안즈는 본인도 놀랄 정도로 갑작스런 결론을 내렸고, 바로 오늘 실행에 옮길 예정이었다. 그래, 계속 속만 끓일 수는 없으니까. 언제까지 고민만 할 수는 없다. 노는 물이 들어올 때 저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