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보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사회인이 되고부터는 연락은 계속 해도 자주 보지는 못했기에 이렇게 얼굴을 마주보는 시간은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간의 일상 이야기를 하고 떠오르는 추억이 있으면 즐겁게 웃는, 그런 자리를 생각하고 나왔다. 그래, 분명 그랬는데.
"어떡하지, 마오 군."
대충 근황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이야기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던 탓에……
"나…… 임신했나 봐."
"……."
마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놀라 뒤로 넘어가려던 것을 이 정도에서 그친 거라고 해야겠다. 아마, 저가 아니더라도 제 소꿉친구가 이 사실을 알면 뒤로 넘어갈 게 분명했지만.
"누구의?! 아니, 잠깐, 알고 있어. 이게 아니지. 이게 아니야."
누구긴 누구겠나! 제 고향의 수호신이자, 소꿉친구에겐 형이고, 마주보고 앉아있는 고등학교 동창에겐 연인인 사람. 사쿠마 레이, 그 사람일 게 분명하고 그 이외엔 있을 수가 없었다. 마오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아파오는 머리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레이 님! 대체 어쩌자고! 저야 별 상관 없다지만, 마을 어른들은 이 사실을 알면 들고 일어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벌써 머리가 아팠다.
"레이 님은 아셔? 아니, '했나 봐'라는 건 확정이 아닌가."
"병원에는 안 가봤지만…… 저기, 그, 테스트……가."
"……."
그럼 뭐, 거의 확정일 것이다. 하아, 마오가 한숨을 쉬었다. 왜 저를 찾아왔는지 대충 이해도 되었다. 아마, 보통 인간의 병원을 가도 될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을 테지. 마오는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만큼 뭔가 도움 줄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듯 했다.
'그런데 이건 나도 어떻게 해줄 수가…….'
남자, 거기에 20대의 미혼인 마오가 뭘 알고 도와줄 수 있겠는가. 확실히 수인에 대한 것은 안즈보다는 조금 지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수인과 인간 사이의 자식이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까지 알 리가 없었다. 거기다 레이는 보통 수인도 아니니 더더욱 확답을 주긴 어려웠다. 마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레이 님한테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정 어려우면 리츠한테라도 슬쩍 얘기해서 도움받는 건 어때?"
리츠라면 같은 종족이니까 잘 알지도 모르지. 그렇게 덧붙였더니 안즈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엄청 당황한 상태야."
"그렇겠지."
딱히 인간이 아닌 종족의 아이를 품어서가 아니라, 그냥 창창한 나이에 계획 없는 임신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당황스러운 것이리라.
"좋아할까?"
하지만 그것 외에 걱정거리가 더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오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묻는 주체가 레이라면, 분명 좋아할 것이다. 리츠라면, 모르겠다. 그 녀석은 제 형이 순진한 친구를 꼬드겼다며 둘의 연애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하니까. 그래도 욕을 들어먹는 건 아마 레이 쪽일 것이다. 그럼 마을 사람들은? ……이 쪽은 별로, 생각하기 싫었다. 신의 동생인 리츠에게도 돌연변이라며 날을 세우는 사람들이다. 환영받을 리가 없다.
"그렇겠지. 레이 님은 안즈 널 엄청 사랑하시잖아. 여태 그런 고집을 부리신 적은 없었어. 맘에 안 들어도 어른들의 요구사항은 다 들어주셨단 말이지. 저주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귀찮고 시끄러운 걸 싫어하시니까."
하지만 지금은 좋은 것만을 말해 주자.
실제로 어릴 적부터 리츠의 또래 교육 담당으로 발탁되어 사쿠마 가에서 자라다싶이 한 마오에게는 안즈와 사랑의 교감을 하는 레이는 매우 신선하고 낯설었다. 그만큼, 다른 사람 같았다.
"……응."
안즈의 웃음이 씁쓸한 것에서 사랑스러운 것으로 바뀌었다. 사랑의 힘이란 것인지.
"저기, 축하한다고 해 줘. 잘 못 들을 말일 것 같으니까 듣고 싶어."
안즈의 말이 담담히 쏟아졌다. 일부러 말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제 미래를 예감한 것 같았다. 그래서, 마오는 저라도 밝게 웃어주자고 생각했다.
"축하해. 레이 님이 좋아하시겠다."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거냐는 건 나중에 따져도 되겠지. 사실 굳이 제가 아니라도 어딘가 떠돌아다니며 늘어지게 잠이라도 자고 있을 리츠가 이 일을 알게 되면 아마 직접 형의 멱살을 잡으러 갈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마오는 조용히 축하해주는 역할이면 될 것 같았다.
"고마워."
저기, 역시 동물 모습으로 뱃속에 있는 걸까? 마오의 축하 멘트를 들은 안즈는 곧 환하게 웃으며 제 궁금증을 풀어놓았다.
별로,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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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트릭의 설정도 있었 읍니다....
지인분 생일선물로 드린 글 뒷설정 번외같은 글.... 공개된 글이 아니라서 따로 설정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