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코코아가 들어있는 컵을 든 채 침대에 앉아있는 안즈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 조용히 안겨 오긴 했지만, 이 곳은 안즈가 평소 지내는 아지트가 아니었다. 차마 시선은 들지 못한 채로 컵만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곧 레이가 의자를 끌어와 앉는 소리가 들렸다.
“평범하게 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 쪽은 우선 그 설명부터 듣고 싶구먼.”
딱딱한 목소리에 안즈의 눈동자가 슬쩍 위로 굴렀다. 그 시선이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로 곧게 안즈만을 바라보고 있는 눈과 마주치자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항상 상냥하게 웃어주었던 붉은 눈동자가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년 만에 만난, 죽은 줄 알았던 레이는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보다 키가 더 자랐고, 선이 더 굵어진, 정말 어른 남자가 된 모습이었다. 레이가 죽고 난 후부터 안즈가 계속 상상해봤던 그것보다 더 잘난 모습. 안즈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말투는 왜 그래요?”
“아까는 급해서 잊어먹었던 거라…… 뭐, 설명하자면 긴데. 그래서, 안즈. 왜 이 쪽 일을 하고 있는 게지?”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은 없는 거구나. 상당히 언짢은 듯 한 모습에 괜히 부아가 치밀어 안즈는 호로록 소리를 내며 코코아를 마셨다. 왜 하고 있냐니.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더 중요한 건 죽은 사람이 왜 살아 있느냐이지, 계속 살아있던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가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단 오빠 이야기가 더 무게가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그냥……”
“…….”
“……그동안 계속 구해 준 것도 오빠였나요?”
이번에는 레이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네.”
안즈의 입이 꾹 다물렸다.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살아있었다니. 계속 환영이라고 화내던 리츠가 떠올랐다. 대체 뭣 때문에 살아있는 걸 숨겨야 했던 걸까. 레이가 죽었다고 믿고 있었던 시간 동안 상처를 받은 건 안즈 뿐만이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숨이 막혔고, 매일같이 서로 위로하며 지냈다. 7년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안즈.”
가만히 앉아 아무 말도 꺼내지 않는 안즈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레이는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다시 목소리를 냈다. 안즈의 어깨가 움찔 떨렸지만, 시선은 올라오지 않았다.
“사정이 있었단다.”
“…….”
아무 반응도 없이 컵만 꼭 쥐고 있는 모습에 레이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7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니까. 그는 죽은 줄 알았던 내가 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당장 받아들이라고 할 정도로 상식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안즈가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받았을 상처들이 금방 사라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래서 조심스레 말을 골랐다.
“정말 죽을 뻔 했었어. 그건 맞아. 이대로 죽겠구나 생각했지.”
“……!”
안즈가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에 서린 두려움이 그대로 전달되어서, 레이는 잠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야. 사쿠마 레이잖아? 어떻게 살아나기는 했어. 살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어.”
“…….”
어느새 옛날에 쓰던 그 말투로 돌아온 레이를 바라보는 안즈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떨렸다. 왜요, 그렇게 묻고 싶은데 누군가 목을 막아놓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레이는 그런 안즈를 시야에서 한 순간도 놓지 않으며 미동도 없이 계속 말을 이었다.
“명령이 떨어졌지. 이대로 죽은 척 하고 있으라는. 상대는 내가 죽은 줄 알고 있었거든. 터무니없지만, 이대로 죽은 척 해서 비밀 전력으로 남아달라는 의뢰였다. 흠, 같은 조직인데 의뢰라고 하기도 뭐하군. 부탁이라고 할까? 아무튼, 이건 극비였으니까. 밑의 사람들은 절대 알면 안 될 사항이었지. 에이스가 죽었는데 제일 밖에 노출이 많이 되는 사람들이 태평하게 지내는 것도 이상하잖아, 안 그래?”
말인즉슨, 적대 조직들을 방심하게 하기 위한 장치라는 듯 했다. 그래서 말투도 바꾸고, 그들이 봐오고 알던 사쿠마 레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살았다고 했다.
“……거짓말…….”
견딜 수 없었는지 안즈가 컵을 협탁에 내려놓았다. 이대로 계속 쥐고 있었다간 깨뜨릴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밀려들었기 때문이었다. 레이가 끼고 있던 팔짱을 천천히 풀었다.
“사실 지금 이렇게 네 앞에 있는 것도 안 되는 일이야. 내 임무를 알려주는 것 또한.”
“…….”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에 안즈의 눈에 서서히 눈물이 차올랐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사람을 그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대체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건 몇 명일까. 당신은 왜 그런 희생을 해야만 했을까. 왜 당신이. 안즈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리, 츠 군도 모르는 것 같았어요. 믿어주지 않았어……”
“그 애는 내 혈육이잖아. ……더더욱 알면 안 되는 위치지.”
흘러나온 동생의 이름에 레이의 미간이 괴롭게 구겨졌다. 숨어 지내는 삶에서, 동생을 잊어 본 적은 한시도 없었다. 물론 작았던 소녀도 잊지 않았다. 제일 상처받았을 그들을 생각하면 항상 괴로웠다. 하지만 자신이 죽음으로써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이 일에서 발을 뺐으면 하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었기에, 정 반대 효과가 일어나버렸을 때의 기분 따위 이 아이는 모를 터였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레이가 천천히 일어서더니 안즈 앞의 바닥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안즈를 올려다보았다.
“리츠 곁엔 네가 있어주었겠지…… 고맙다, 안즈.”
“……그, 런.”
“사실 리츠에게도 전하고 싶어. 혼자 둬서 미안하고…… 안즈를 지켜줘서 고맙다, 라고.”
“……윽…….”
눈물이 흘렀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안즈의 무릎을 적시는 모습을 보면서 레이는 상냥하게 팔을 뻗었다. 7년 만에 본 아이는 완전히 어른이 되어 있어서, 예전처럼 뺨을 쓸어주기에는 조금 주저함이 있었지만 가만가만 눈물을 닦아주었다. 여전히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정말, 죽은 줄 알았는데……”
“그래.”
안즈는 서럽게 울었다. 7년 전 그 날로 돌아간 것처럼, 나오는 건 눈물뿐이었다. 눈앞에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이 있는데도 왜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걸까. 하지만 그저 울며 진심을 말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정말 보고 싶어서, 매일같이 무덤도 찾아갔어요. 보고 있었어요?”
“응.”
“리츠 군도, 많이 보고 싶었을 거예요. 말은 안 했지만……”
엉엉 울면서도 끊이지 않는 말들에 레이는 씁쓸하게 웃었다. 모두 지켜보고 있었고, 알고 있었으며, 너희의 곁으로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레이는 그런 날들과 싸워왔다.
“그러니까, 안즈…… 나는, 너희들이 이제라도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상냥하게 눈물을 닦아주던 큰 손 위로 조그만 손이 덮였다. 레이의 눈이 조금 커졌다.
“혼자는 싫어요.”
“…….”
울어서 발개졌으면서도 의지를 담은 눈이 곧게 레이를 향했다. 레이가 당황해 잠시 움직임을 멈추자, 안즈는 그대로 팔을 뻗어 레이의 목에 감았다. 레이의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울었다.
“겨우 만났는데, 다시 혼자로 만들지 않을 거야.”
“안즈.”
“같이 가요. ……부탁할게요, 레이 오빠. 리츠 군이랑…… 나를, 도와줘요.”
레이를 꼭 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눈물 젖은 얼굴을 어깨에 묻은 채 놓지 않는 안즈를 말없이 바라보던 레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가씨는, 언제 이렇게 컸는지. 어깨가 축축해지는 게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레이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래. 사실, 이 날만을 기다려 왔을지도 몰라.
“……그럴까.”
안즈의 등에도 레이의 팔이 감겼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너를 두고 어떻게 다시 갈 수 있을까.
“그러자, 안즈.”
돌아가자, 우리들이 있어야 했던 곳으로.
ㅋㅋ완결입니다(진짜루)
더 없구요.... 진짜 완결이고..... 그렇습니다 끝났습니다 드디어 털었다! 마피아!(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