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한두번이어야 참지, 대체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아무리 눈치를 줘 봐도, 옆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남자는 전혀 행동거지를 고칠 것 같지 않았다. 일단 심호흡. 이 날것의 짜증을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으니 누르고, 여자는 드디어 참고 참던 입을 열었다.
"저기, 그만 좀 할 수 없어?"
"……."
눈에 힘껏 힘을 준 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느껴지지 않는단 말야? 어이없는 표정으로 변한 여자가 팔을 들어 대답도 없이 여전히 멍하게 앉아 휴대폰 액정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는 남자의 어깨를 쳤다.
"이봐, 사쿠마 레이 씨? 말이 안 들리나요?"
"……아, 이런."
그제서야 여자의 존재를 눈치챘는지ㅡ눈치챘다고 하는 것도 웃겼다. 처음부터 같이 앉아있었으므로ㅡ레이는 퍼뜩 고개를 들더니 자신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 손에서 점점 시선을 올려 여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서서히 '아, 그러고보니 있었지.'로 변해가는 레이의 표정을 보며 여자는 잠시 한대 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일단 참았다. 교양있는 지성인은 함부로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되니까. 큼, 헛기침을 한번 한 여자가 레이의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체 아까부터 뭐 하는 건데? 짜증나 죽는 줄 알았거든. 액정 깜박깜박 하는 거. 잘난 기억력으로 대본 다 외워서 심심한거면 저리로 가서 장난쳐줄래?"
"하하, 꽤나 날카롭구만? 미안, 미안. 그냥 조금…… 신경쓸 일이 있었어."
"……?"
신경쓸 일이 있다기엔 너무나 정직하게 홀드도 풀지 않고 그저 깜박이기만 하던 액정이었다. 뭔 소리야, 미간을 찌푸리며 읽던 대본으로 눈을 돌리던 여자였지만 순간 뇌리를 스쳐가는 것에 다시 레이와 눈을 맞췄다. 설마. 에이.
"뭐야, 설마 여자?"
"…음…… 성별은 여자가 맞긴 하지."
"요컨대 아무 사이도 아닌 여자다, 이거지? 하, 거짓말 하고 있네. 뭐야, 짝사랑?"
여자의 말을 들은 레이의 표정이 미묘해져갔다. 한번에 자신의 말에 담긴 의미 파악을 해 버린 사람은 드물었던 탓이다.
아, 맞다. 맞아. 기정사실이다. 여자가 한숨을 쉬었다.
"나같이 치명적인 연상을 차놓고서 찌질하게 연락도 못하는 짝사랑을 하고 있었다 이거지."
"찌질하단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지금 세상 제일 찌질해 보여, 당신."
흔하지 않은 반격에 레이의 눈이 잠시 놀란 빛을 띠다가 곧 한숨쉬듯 웃었다. 그래, 그렇구먼…… 씁쓸하게 뱉어지는 원래 말투ㅡ지금은 연기 집중의 일환으로 잠시 부끄러운 말투를 쓰는 거라 했다ㅡ에 레이의 상대배우이자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자가 쯧쯧 혀를 찼다. 정작 자기 사랑엔 적극적이지 못한 녀석이었잖아?
"천하의 사쿠마 레이가 현재 여배우의 절정을 찍고 있는 난 웃으면서 차놓고 정작 짝사랑녀에겐 연락도 못 하는 멍청이었다니 말이야. 세상이 놀라 뒤집어질 일이야. 안 그래?"
"……여기엔 다 사정이…… 아니, 그만둘래. 더이상 얘기하면 바보 취급만 더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사정이고 뭐고, 그러다 놓쳐. 놓치고 후회하려고?"
"……."
보나마나 바보같은 이유일 것 같은 느낌에 여자는 직구를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대단한 여자기에 배우고 아이돌이고 가리지 않고 여자들을 반하게 만든 사쿠마 레이가 이렇게 멍하니 액정만 만지작대게 하는가. 혼자 실연당한 척은 다 하고 있는 꼴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어떤 여잔데?"
"하…… 정말. 고등학교 후배. 곧 졸업 시즌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을 뿐."
"고백을?"
레이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고백 같은 건 안 해. 그녀석은 날 그냥 좀 친절하지만 엄한 선배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냥 가끔 안부나 주고받았을 뿐이라고."
"아…… 그러셔?"
"또…… 이 녀석을 노리는 녀석들은 많으니까, 어쩌면 그 중 한 명을 마음에 두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냐. 왜, 카오루 녀석도 이 후배, 좋아하거든. 부담주기 싫다고 할까 뭐라고 할까. 아무튼 그런 거야."
"아……"
노골적으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변한 여자를 본 레이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주곤 다시 손 안의 휴대폰을 만지작댔다. 졸업이 가까운데도 여전히 일벌레인 모양인 안즈는, 오늘 낮에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드림페스 뒤풀이 현장인 것 같았고, 코가, 아도니스와 함께 찍어 보낸 사진이었지만 레이의 시선을 고정시킨 건 그 뒤에 함께 찍힌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아, 1학년인가. 그렇지. 이제 그 학교의 역사는 지켜볼 수 없으니까 모르는 얼굴이 생기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 오오가미 군이랑 오토가리 군의 답례제, 보러 와 주실 거죠?
자신이 없는 곳에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하고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과 관계를 쌓아온 안즈를 생각하니 조금, 기분은 나빴던 것 같다.
또 휴대폰을 쥐고 멍하니 생각에 잠긴 레이를 본 여자의 얼굴에 한심함이 깊어졌다. 답답바이러스 옮겠다. 마냥 완벽해만 보이는데, 사실 저렇게 한심한 녀석인 줄 몇명이나 알까 몰라. 혼자 생각을 마친 여자는 곧 주섬주섬 대본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난 후 구두굽으로 바닥을 세게 한 번 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짜증스럽게 말을 쏴붙였다.
"멍청이 아니야? 관심 없고 어떻게 살든 상관 없으면 연락같은 거 안 하지 않을까? 그렇게 남한테 줄 수 있을 정도로 미적지근한 마음이면 그냥 나랑 사귀지 그래? 짜증나, 진짜."
미련없이 자리를 털고 다음 씬 준비를 위해 떠나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본 레이는 잠시 후 허탈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가."
그랬다. 이 후배에 관한 한 사쿠마 레이는 그저 나약하고 비겁해지는 멍청이일 뿐이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무심코 부린 허세가 발목을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틀렸다.
"그래도 그대는 안 된다네."
미적지근할 리가 없지 않은가. 어떤 결말이 나더라도…… 이 몸의 시곗바늘을 움직여 준 건 세상에서 단 한 명, 그 아이 뿐이니까 말일세.
제 꿈에선 레이안즈가 어 막 관에서 잠도 재워주고 정기 운운하고 일인 연주회도 해주고 막 어 먹어버린다고 하고 무릎베개도 하고 그러던데 역시 그건 공식이 아니고 제 꿈이었고 제가 환술에 걸려있었나봐요 무슨 소리야.. 그런게어디있어.. 거짓말치지말라구.. 아쿠아리움부터가 공식이잖아^^;;(현타와서 난리입니다 무시하세요...)
조각글 쓰려고 했는데 왜 또...😔💦
사실 제목이랑 별 상관은 없는거같네요 노래듣다가 급 화나가지고 사쿠마 실연시키려고 한 건데 결국 또 쌍방(..?)이네 다음엔 진짜 실연이다(무시하세요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