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어어어 너무 양심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하편은 빨리 가져올게요............ 아 근데 쓰면 쓸수록
이즈안즈랑 너무 데자뷰 느껴져서 소재와 실력의 한계를 느낌... 그냥 그러려니 해주세요
어쩌겠어요 똑같은 사람이 쓴건데ㅠ(젠장....)
매화나무가 처음 심어졌을 때부터 나무와 운명을 함께한 레이는, 나무가 오래된 만큼 마을을 오래 지켜봐왔다. 꽃을 좋아하던 소녀들은 매화가 필 즈음이면 꼭 놀러와 꽃구경을 하다 가곤 했고, 일하다가 나무 그늘 밑으로 쉬러 오는 어른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레이는 그들의 세대가 계속해서 교체되는 것을 모두 본 영물이었다.
인간들이란 선하면서도 악했기에, 별별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싸우고 욕하고, 서로 해치기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레이가 몸담은 나무에 위해가 가해지기도 했다. 물론 레이가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가만히 있을 성격은 아니었기에 제 값을 톡톡히 돌려주곤 했지만 시간이 꽤 흐르고서는 인간들이야 어찌됐든 그저 자고 있을 때가 많아졌다. 정말이지 쓸데없이 긴 목숨이구나. 그렇게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꽤 긴 시간동안 현신도 해오지 않은 레이를 깨운 것은 다름 아닌 작은 소녀였다.
-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
울망한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던 소녀는 한동안 나무를 올려다보다가 돌아갔었다. 가만보니 매년 부모님과 꽃구경을 하러 왔던 아이 같기도 했는데, 아마 부모님을 잃은 모양이었다.
- 난 씩씩하게 살거야. 보란듯이 살아남아서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될래.
나무를 보고 부모님이 보고싶다며 울먹였던 소녀는, 그 다음날엔 씩씩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눈이 빨간 것이 아마 한바탕 울고 온 것 같긴 했지만 꽃에겐 예쁜 얘기만 해줘야 한다며 자기소개를 하고 웃던 소녀가 꽤 신경이 쓰인 레이는 그 이후에도 소녀가 오는 시간만 되면 일부러 깨어있곤 했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어, 내일은 이랬으면 좋겠어. 재잘재잘 떠들며 웃는 소녀, 안즈의 미소는 너무나 밝고 해사해서 어느새 레이도 소녀를 보며 웃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주로 일이 끝난 밤에 찾아오는 안즈의 얼굴은 달빛이 비쳐 아주 고왔고, 항상 빛났다.
"무슨 일일꼬."
그런데 그런 안즈가 3년 전 그날 이후로 본 적 없는 우울한 표정을 하고 찾아오니 레이가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무를 껴안고 쓰다듬어 주던 평소와는 다르게 등지고 앉은 것도 의아했는데, 가느다랗게 떨려오는 어깨를 보고 있으니 레이는 더 참을 수가 없어졌다. 저 고운 아이에게 위해를 가한 것이 누구인지, 무슨 일인지 알고 싶었다. 아니, 알아야 했다.
"대체 뭐가 그리 서러울꼬...... 뭐든 들어주마, 말해보렴."
매우 오랜만의 현신이었다. 긴 세월동안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았던 레이의 목소리가 안즈의 귀에 닿았고, 곧 안즈의 놀란 눈과 레이의 웃고 있는 눈이 마주쳤다.
아, 이건 또 각별하구나.
물기가 들어찬 안즈의 눈동자를 바라본 레이의 웃음이 곤란하게 변했다.
* * *
"그럼 레이 씨는 계속 저를 지켜봐 온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놀라 굳은 안즈를 진정시킨 후 나란히 앉아서 사정설명을 하자 경계를 거뒀는지 굳어있던 안즈의 어깨가 풀렸다. 진정을 하자 슬슬 신기해지기 시작했는지 흘낏흘낏 쳐다보는 시선에 레이가 바닥을 소리나게 툭툭 쳤다.
"그렇게 몰래몰래 보지 않아도 괜찮은데 말이네. 자, 대놓고 보게나?"
"아, 안 봤어요."
"거짓말이구먼. 계속 쳐다보지 않았나. 자, 아가씨라면 얼마든지 쳐다봐도 환영이라네."
아무렇지도 않게 날아드는 부끄러운 대사에 안즈는 괜히 민망해졌다. 이 매화의 정령은 아무래도 꽤 뻔뻔한 성격의 소유자인 모양이었다. 결국 안즈는 레이에게 얼굴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음?"
"그, 그런 대사를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세요? 우린 오늘 처음 본 사이라고요."
차마 레이를 쳐다보지 못하는 안즈를 빤히 쳐다보던 레이의 눈꼬리가 휘었다.
"섭섭하구먼. 이 몸은 아가씨를 3년, 혹은 그 전부터 봐왔는데?"
"그건 그쪽이고요... 저는 계속 나무랑 대화했지 레이 씨랑은,"
"매화가 이 몸이고 이 몸이 매화니까 말이야. 따로 생각할 필요 없다네. 어쨌든 이 몸은 이 나무와 모든 것을 공유하거든."
레이가 그렇게 대답하며 손을 올려 안즈의 고개를 부드럽게 다시 제 쪽으로 돌렸다. 물기가 가신 파란 눈동자를 보며 눈가를 다시 한번 쓸어준 레이는 음, 완전히 그쳤구먼. 하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진작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 줄 것을. 중얼거리고 손이 떨어졌다.
"......."
안즈가 말없이 레이를 쳐다봤다. 아직 혼란이 섞인 표정이었지만 그런대로 상황은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레이 역시 말없이 안즈를 쳐다보기만 했다. 사랑스러운 눈동자가 온전히 자신에게만 향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안즈가 항상 말을 걸고 상냥하게 쓰다듬었던 '나무'는 자신 그 자체이기도 했지만, 다른 존재이기도 했다. 나무와 생명을 공유하고는 있지만 어쨌든 레이는 깃들어 있을 뿐이므로, 사실 안즈가 했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이 소녀를 직접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아닌, 사쿠마 레이 자신이다.
"...아까 하던 얘기나 해 볼까. 기루에 팔려갈 뻔했다고?"
"아."
침묵을 깬 레이의 말에 안즈의 입에서 짤막한 음이 흘러나왔다. 맞다. 안즈의 표정이 다시 굳어지는 걸 본 레이의 미간이 슬며시 구겨졌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여전히 화가 난다. 인간들은 어쩜 이렇게 변하지를 않을꼬. 그리고 그것이 레이가 각별하게 여겨오던 사람에게 닥쳐온 일이라면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
"뭐, 뾰족한 수가 없으니 여기서 울고 있었던 것이겠지만."
대답 없이 무릎을 모으고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안즈를 보며 레이는 한숨을 흘렸다. 정령이라고는 해도, 요물이었다. 인간은 상상도 못할 세월을 살아와 쌓은 힘도 상당했기에 레이는 인간 하나 처리하는 것쯤 일도 아니었다.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듯, 레이도 그저 그렇게 널려있는 정령의 수준은 한참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없애줄까, 말하면 싫어하겠고."
"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툭 뱉은 말에 안즈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음, 그런 아가씨니까. 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안즈를 본 레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안 한다네, 안 해. 안즈의 양 주먹에 긴장으로 힘이 꾹 들어가는 걸 본 레이가 그 주먹을 살살 어루만져주며 말했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여기를 와 주다니 이 늙은이가 화를 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저한테, 소중한 존재니까요."
...아, 나무, 나무요! 안즈가 빨개진 얼굴로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귀엽구먼. 밖으로 내뱉지는 않고 속으로만 생각한 레이의 입에서 큭큭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무라니까요, 울상이 되려 하는 얼굴에 레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 그럼 어쩐다.
"별 수가 없으면 할 수 없지. 이 몸이 도와주겠네."
"네?"
뜬금없는 발언에 안즈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가씨는 지금 신변에 위협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어, 네에...... 그렇긴 하지만."
뭘 한다는 건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아 놀람 반 불안함 반으로 레이를 바라보는 안즈를 레이가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신세진 보답도 있으니 제안을 하나 하지. 이 몸이 아가씨의 보호자가 되어주겠네."
"...네에?"
레이는 천천히 일어서 달빛을 등지고 놀라 굳어있는 안즈를 바라보았다. 안즈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따라 그저 눈동자를 굴릴 뿐이었지만 머릿속으로는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