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소식을 들은 것은 아주 갑자기였지만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기에 무덤덤하게 있을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온 얼굴에 만면한 웃음을 띄우며 축하해 줄 수 있었다.
내 마음이 어떻든지 간에, 나는 너희를 사랑하니까.
아무렇지 않게 내 마음을 숨겼다.
* * *
너를 볼 때만은 내 자신이 싫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곳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자리인데도, 그 자리를 원하는 내가 싫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저 사이좋은 친구인 척, 하지만 사실은 시커먼 내 마음을, 너희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 줬으면 했던 선물상자를 전해주고 오라며 등 떠밀던 순간에, 나의 마음은 땅바닥까지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는 걸.
절대로 닿을 수 없는 마음,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마음.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혼자 외롭게 있어야 했던 나의 마음을, 너희는 알고 있었을지.
아니, 알고 있으면 안 된다.
알고 있으면… 안 됐다.
* * *
“우리 결혼해. 이달 말부터 준비 들어갈 거야.”
폭탄같이 터져버린 발언은, 모여있던 모두에게 경악을 가져다줌과 동시에 기쁨과 환희를 터뜨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너무 축하해, 결국 결혼하는구나. 역시 너희들은 결혼할 줄 알았어. 소라언니, 프러포즈는 어떻게 받았어요? 청첩장은 언제 나와? 중구난방하게 쏟아지는 말들 속에서 잠시간 말이 없는 타이치를 응시하던 야마토는 이내 말없이 시선을 돌려 소라와 함께 무수한 질문공세에 답변을 했다.
“축하한다. 대체 언제쯤 말해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짜식들. 야! 이제 이시다 야마토가 유부남이 되는구나! 여자들 다 울겠네, 울겠어! 불쌍한 여자들.”
“여자들이 왜 불쌍하니? 엄연히 임자는 나였는데.”
“야야, 정색하지 마. 나도 알어. 어라? 그러고 보니 너 이시다 소라가 되는 건가? 거참 어감 이상하네.”
아주 짧은 시간의 침묵이었지만 야마토는 분명히 타이치의 감정을 읽었다. 알고 있었지만 모른척했다.
고등학교, 아니, 어쩌면 중학교 때부터였을까.
너는 대체,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며 언제부터 숨겨왔을까.
하지만 자신이 알아챘다 한들, 또 그 사실을 표출한들 자신에게도, 타이치에게도 득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야마토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저 한 사람이라도 덜 상처 받기를 바라며 소라의 눈을 가렸고, 귀를 막았다.
그렇게, 자신들은 완벽하게 속고 속아주고 있었다.
* * *
“내가 불쌍하냐?”
“…….”
난 내가 불쌍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술맛 너무 좋네. 괜히 더 슬프게시리. 그렇게 말하고 한 잔, 두 잔, 연거푸 술을 따라 마신다.
“야, 코시로.”
“네.”
“넌 그러지 마. 놓치지 마. 이거… 진짜 너무 많이 힘들다.”
“……그만 드세요. 너무 많이 드시는 것 같은데요.”
“이런 날은 그래도 돼.”
이렇게 기쁜 날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 지 자신도 인식이 되지 않는다. 많이 취했나, 아니, 아직 안 취했는데. 아니, 취했나?
그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 마음이, 술을 따라 마시는 만큼 씻겨 내려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또 한 잔, 두 잔.
“내가… 바보같냐?”
눈앞의 코시로가 살며시 얼굴을 찡그리는 게 보였다. 어이가 없는 건가, 대답하기 힘들어서 그러는 건가. 답은 뻔히 보였지만 괜히 삐뚤게 생각했다. 아, 왠지 눈앞이 흐린데…
“나도 내가 바보같다…… 그치만, 그녀석들은, 행복하길 바라….”
툭. 투둑. 상 위로 떨어지는 눈물 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바보같이 상냥한 거죠… 차마 내뱉지는 못하는 생각도 하나, 둘.
2014. 12. 28
디지페스(DiGiFES)
타이치x소라x야마토 배포본
w. 수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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