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한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문 밖의 기척을 눈치채고 뒤돌았을 때 보인 것은, 충격으로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녀였다.
"……안즈."
"어딨어요? 이런 장난 싫어요……"
죽은 사람을 잘 따랐던 어린 소녀를 보던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울고 있는 소녀를 위로해 줄 방법을 몰랐다. 그 역할은 항상 그 사람이 해 오던 것이었으니까. 이 조직의 제일가는 실력자이자 기대주였던 사람, 사쿠마 레이만이 소녀의 눈물을 그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녀가 가장 의지했던 그는 이제 없다.
-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그저 그런 신생 조직들과 비할 것이 못 되는 조직이었다. 대대로 이어진 조직은 부모에게서 자리를 물려받는 경우가 많았고, 유입도 크게 없었기 때문에 모두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그런 관계였다. 말단들은 어찌됐든, 고위 간부들은 대부분 그랬다. 안즈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레이도 그랬다. 물론 모두 조직에 남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고, 어린 시절만 여기서 보내고 성장하면 평범하게 조직을 나가 사는 경우도 있었다. 레이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기에 조금 이르게 자리를 이어받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뛰어난 두각을 보였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굉장히 인정받고 있었다. 본래 실전에 나갈 나이보다 이른 나이에 현장에 투입됐는데도 실력자로 칭송받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안즈, 리츠. 나는 너희들이 이 일을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왕 좋은 조건에서 태어난 것, 평범한 삶을 살아.'
'왜요?'
'으음…… 매번 그러는 게 아니라고 해도 사람을 상처입히는 일 같은 건, 하기 싫잖아. 낮과 밤이 나뉜 생활보다는 낮 밤 모두 똑같은 생활이 덜 피곤하지.'
'나는 상관 없는데.'
'이 녀석, 리츠. 네가 제일 걱정이다.'
레이는 매번 그렇게 말하며 웃곤 했다. 나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너희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평범하게 살아.
'하지만…… 미안해요.'
그 바람, 못 이뤄 줄 것 같아.
시신 수습도 못 한 채 만들어진 무덤 앞에서 소녀는 울었다. 며칠을 먹을 것도 못 넘기며 울었지만 눈물은 마르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나왔다. 아직도 현실이 아닌 것 같은데, 싸늘한 비석은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
빈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 사람이 못다 한 일을, 스스로 이어나가고 싶었다.
-
"안즈?"
"아, 으응?"
"왜 그래, 멍하네. 얼음 다 녹았어."
"아…… 미안. 잠깐 옛날 생각 좀 하느라고……."
한적한 카페 안, 안즈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친구는 빙긋 웃었다. 아, 네 지갑 속에 항상 들어있는 그 사진의 오빠라도 생각했어? 짓궂게 묻는 질문에 안즈는 그저 미소만 지어준 채 얼음이 다 녹은 라떼를 마셨다. 아니라곤 말 못하겠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보였는지 친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말 좋아했나봐. 지금은 연락도 안 된다면서 매일매일 이렇게 지극정성. 다른 남자 찾아 볼 생각은?"
"……없네."
"하여튼 일편단심이라니까. 완전 손해 보고 있어."
사실 연락을 할 수 없는 거지만…….
그런 사정은 전혀 말해주지 않아 알 길이 없는 친구는 그 오빠가 안즈가 고백해보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떠난 줄 알고 있었다. 뭐, 그 정도로 충분했다. 지상의 친구에게 굳이 어두운 이면을 보여 줄 필요는 없으니까.
"아, 나 오늘은 조금 일찍 가 봐야 해. 집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 괜찮아. 어차피 나도 오늘은 과제가 많았거든."
미룰 생각이었지만. 말을 덧붙이고 헤헤 웃는 친구를 보며 안즈도 살풋 웃었다. 미루지 말고 제때제때 좀 해.
조금 있으면 평범한 여대생의 껍질을 벗게 될 테니까, 지금은 그저 보통 여대생처럼 웃고 떠들고 싶었다.
-
아, 끝인가.
안즈는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붙들려고 노력했다. 안 돼,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는 없는데.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남겨 둔 사람들도 많았다. 내가 죽어버리면 다들 슬퍼할 거야, 나까지 가면 리츠 군은 어떡해. 감기는 눈을 어떻게든 뜨고 싶었지만, 당한 상처가 너무 깊었다. 정신을 잃는 순간 끝인데, 끝인데……
"뭐, 거기까지인 거야. 포기하도록 하라고, 계집."
"계집치곤 오래 버텼지. 뭐가 실력자야? 웃기지도 않아, 정말. 얕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래, 나는 약해. 그래도 이를 악물고 살았어. 그 사람의 대신이 되려고, 힘냈단 말이야. 잃어가는 의식 속에서도 북받치는 분함에, 안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억울했다. 분했다. 네가 그 사람의 뒤를 이을 수 있겠냐는 의문에 제대로 답해주지도 못했는데, 결국 이렇게 사라지게 되는 걸까. 눈 앞이 흐릿해졌다. 한계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