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하기만 하던 이즈미를 떠올리며 안즈는 책상에 엎드렸다. 누굴 놓쳤길래 그런 냉한 얼굴을 하고 사람을 무시했을까. 안즈가 누굴 놓쳤냐고 묻자 이즈미는 대답 없이 고개만 돌려버렸었다. 쌀쌀한 요괴 같으니.
하긴, 안즈 자신조차 왜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이즈미에게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 이즈미도 자신의 시시콜콜한 개인사를 안즈에게 얘기해 줄 의리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의무도 없다. 수확이라고 할지 요괴도 꽤 복잡한 삶을 사나보다, 알게 된 건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딱 거기까지. 자신도 요괴의 삶에 끼어들 생각은 없으니까.
'이상해, 정말.'
최근엔 정말 이상한 일 투성이다. 뜬금없이 요괴를 만나고, 그 요괴와 안면이 있는 듯한 잘나가는 모델을 만나고, 꽁꽁 잘 숨겨왔다고 생각한 좋아하는 사람을 들키고-사실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 자신 뿐이었지만-, 그 짝사랑 얘기를 전혀 상관없는 요괴에게 털어놓고. 아무튼 만화나 소설에서나 일어날 것 같은 일 뿐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고민해도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잘 알지만 혼란스러운 것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대체 왜 그랬지, 그 성질 나쁜 요괴한테 말해서 좋은 게 뭐라고. 집에 돌아간 저녁부터 시작된 고민은 다음날인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었다.
"어라, 안즈 쨩~ 왜 그러고 있어? 어디 아파?"
한참 엎드려 있었더니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걱정스러운 표정의 마코토가 서 있었다. 살짝 그 뒤를 보니 저 멀리서 학급위원장 일을 처리하던 호쿠토가 바라보는 것도 보였다. 스바루는…… 원체 교실에 붙어있는 타입이 아니니까. 안즈는 엎드려있던 상체를 폈다.
"정말 괜찮아. 아무데도 안 아픈 걸? 항상 걱정만 끼치는 것 같네, 나야말로 미안, 유우키 군."
"그래그래, 안즈는 괜찮아. 아무데도 이상한 데는 없어보여~ 하지만 안즈, 고민이 있으면 우리한테 말하기로 했지? 그런 얼굴, 반짝반짝하지 않아~ 좋지 않아~ 기운 내! 기운!"
"……?!"
분명 주위엔 마코토밖에 없었을 터인데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스바루가 안즈의 등을 팡팡 쳤다. 아무 기척도 못 느꼈는데! 당황하는 안즈는 보이지 않는지, 스바루는 그저 하하 웃을 뿐이었다.
"으아아, 아케호시 군! 안돼, 안즈의 등을 치지 마~"
"앗, 미안! 아팠어?"
"아, 아니, 괜찮지만……."
어디서 나온 거야, 라는 말은 꾹 삼켰다. 스바루는 항상 신출귀몰한 아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머릿속에서 묘한 납득을 마친 채.
"너희들, 적당히 해. 안즈한테 폐를 끼치지 마. 아케호시,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나타나는 거 그만둬. 놀라잖아. 애도 아니고 언제까지 말해줘야 아는 거야?"
소란을 지켜보던 호쿠토가 결국 일어나서 다가왔다. 내버려 둘 수 없었겠지, 안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베시시 미소만 지었다.
"응~? 놀랐어? 별로 평범하잖아. 흐음, 천성이 그래서 어쩔 수 없는걸! 홋케도 이제 그만 이해해~"
"아니, 그러니까……"
호쿠토가 안즈를 쓱 쳐다보더니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조심해, 툭 한마디 뱉었지만 아무래도 스바루는 한 귀로 흘린 듯 했다. 안즈는 싸움으로 번질 것 같아서 사전 차단한 거려니 생각하곤 호쿠토의 침묵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항상 있는 일, 항상 겪는 일상이다.
"그런데 웃키~"
그런 호쿠토의 말은 가볍게 스루해 버린 채 조금 정신사납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스바루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거, 아직도 따라다니는 모양인데~ 웃키 못 느껴? 내버려두는 거야?"
"?"
'그거?'
어리둥절하는 안즈와는 반대로, 호쿠토와 마코토에게는 폭탄 발언이었던 모양인지 순식간에 둘의 표정이 굳어졌다. 스바루는 자신이 둘에게 끼친 영향같은 건 생각하지도 못한 채 마냥 좋다고 싱글싱글거리고 있었지만, 분위기가 갑자기 얼어버린 것 정도는 안즈도 알 수 있었다. 그야, 그정도까지 눈치가 없진 않은 걸.
"아케호시! 방금 막 조심하라고 한 참인데 너는!"
"아케호시 군……."
마코토가 파래진 얼굴로 안즈 쪽을 곁눈질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서는 안 되는 얘기였나 보다 깨달은 안즈는 자리를 피하고자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평소라면 호쿠토가 가지 않아도 된다며 말려줬을 텐데 호쿠토는 심각한 얼굴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정말 비밀얘기였나 보다. 아케호시 군은 마이페이스니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앗, 안즈. 화장실 가? 문턱 조심해!"
아니, 너희들 얘기하라고 나가는 거야.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삼키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평소라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충고를 받아들여 분명 아무것도 없을 문턱을 살펴본 안즈는 숨을 들이켰다.
"뱀…."
"뱀?"
본 기억이 있다.
"안즈, 지금 뭐라고 했어?"
길고, 투명하고, 분명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그건, 뱀이었다. 전에 봤던 것과 똑같은. 그땐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짜였던 거야?
"안즈 쨩……."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그게, 보여?"
떨리는 눈동자의 유우키 마코토 군.
그리고 이즈안즈 맞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맞으니까 엉엉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설정 다 풀어야 하는거 생각하니 좀 죽고싶음.... 빈곤하게 시작해놓고 중간에 이것저것 추가하는 병 치료해줄사람 구합니다